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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ALBUM: DURAN DURAN – SEVEN AND THE RAGGED TIGER (1983)

발매일: 1983년 11월 21일 / 녹음: 1983년 4월~10월 Mobile studio (Côte d’Azur, France) AIR (Salem, Montserrat) 301 (Sydney, Australia) / 레이블: Capitol, EMI / 작곡: Duran Duran / 프로듀서: Alex Sadkin, Ian Little, Duran Duran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Duran Duran의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1983년 11월 21일 EMI와 Capitol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Alex Sadkin, Ian Little 그리고 듀란 듀란 밴드가 공동 프로듀싱했으며 1983년 4월부터 10월까지 프랑스, 카리브해, 호주에서 녹음되었다. 듀란 듀란은 세금 망명을 이유로 영국을 벗어나 녹음을 진행했지만 이전 두 장의 앨범과 달리 생산성이 낮았고 앨범 방향성에 대한 밴드 멤버들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녹음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이전 앨범 Rio와는 다른 음악적 변화를 원했던 듀란 듀란은 Seven And The Ragged Tiger에서 신디사이저 기반의 질감을 강조한 Synth Pop과 댄스 음악을 시도했다. 가사는 모호한 표현이 많으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리드 보컬 Simon Le Bon은 이 앨범을 작은 특공대의 모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앨범 제목은 다섯 명의 밴드 멤버와 두 명의 매니저를 의미하며 Ragged Tiger는 성공을 상징한다. 앨범 커버 아트는 New South Wales의 주립 도서관에서 촬영되었으며 Malcolm Garrett이 디자인했다.

음악성은 혹평을 받았으나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듀란 듀란의 유일한 앨범이며 미국에서는 빌보드 200 차트 8위까지 올랐다. 이후 더블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앨범에서는 세 개의 싱글이 발매되었는데 Union Of The Snake, New Moon On Monday 그리고 Nile Rodgers가 리믹스한 The Reflex가 있다.

특히 The Reflex는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듀란 듀란은 이 앨범을 기반으로 전 세계 투어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편의 콘서트 필름과 라이브 앨범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2004년 Astronaut 앨범 이전까지 원년 멤버가 함께한 마지막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듀란 듀란의 오리지널 5인조 라인업이 함께한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었으며 이후 2004년 Astronaut가 발매될 때까지 같은 멤버 구성으로의 신작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수십 년 동안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엇갈린 평가를 받아왔다. 비평가들은 이 앨범의 작곡이 전작들보다 약하다고 평가했지만 여전히 1980년대 팝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0년 EMI에서 재발매되었다.

전성기의 문턱에서

1983년까지 Duran Duran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언론과 동료 음악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1982년 앨범 Rio의 성공 이후 상업적인 면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싱글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는 1983년 3월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기록하며 밴드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이 곡의 성공을 활용하기 위해 캐피털 레코드는 듀란 듀란의 1981년 Duran Duran을 미국에서 다시 발매했다. 기존 커버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원래 수록곡이었던 To The Shore를 삭제한 대신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를 포함시켰다. 1983년 3월부터 4월까지 Rio 앨범 홍보를 위한 광범위한 프로모션 활동과 라이브 공연을 진행했으며 이후 세 번째 정규 앨범의 녹음을 시작했다.

레코딩 스토리

1. 프랑스 Château에서

밴드의 매니저인 Paul Berrow와 Michael Berrow의 결정에 따라 Duran Duran은 1년 동안 영국을 떠나 세금 망명자로 지내기로 했다. 이는 성공한 영국 음악가들에게 부과되는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1983년 4월에 세 번째 정규 앨범의 데모를 녹음하기 위해 프랑스 Côte d’Azur의 Valbonne에 있는 3층짜리 샤토 (고성, Château)로 이동했다.

작가 Stephen Davis에 따르면 이 작업의 목적은 라벤더 향이 감도는 언덕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비판을 초래했다. 1995년 Th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존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는 프랑스 남부에서 녹음하며 Rolling Stones인 척했지만 사실 겨우 세 번째 앨범을 만들고 있는 단계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했던 시점이었고 세금 연도 같은 건 전혀 몰랐죠. 하지만 우리 매니저들은 알고 있었고 그것이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이때부터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가 시작됐었죠.”

듀란 듀란은 당시 그들을 둘러싼 과도한 미디어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전속 사진작가였던 Denis O’Regan은 샤토의 편안한 분위기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듀란 듀란은 첫 두 장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Colin Thurston과의 협업을 끝냈으며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 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Ian Little을 새 프로듀서로 영입했다.

밴드는 샤토에서 큰 빈 방을 스튜디오로 활용했으며 악기들은 2층의 넓은 공간에 배치했고 북런던의 RAK 스튜디오에서 대여했던 24 트랙 RAK 모바일 레코딩 트럭의 녹음 장비는 건물 바깥에 놔뒀다. 악기와 녹음 장비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녹음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오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그들은 3개월 동안 데모와 곡 아이디어를 개발했으며 이전 두 앨범과 마찬가지로 리듬 트랙을 녹음한 후 가사를 작성하고 녹음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녹음 세션은 새로운 곡이 부족한 탓에 더디게 시작되었다. 존 테일러는 당시까지의 모든 아이디어가 첫 두 장의 앨범에서 이미 소진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멤버들은 번아웃 상태였기 때문에 창작력이 떨어져 있었다. 프로듀서 이안 리틀 역시 사전에 준비된 곡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출발점은 결국 다른 곡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밴드 멤버들의 방탕한 생활 방식 때문에 오후 4시가 되어야 녹음이 시작되었으며 하루 작업 시간도 겨우 몇 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존 테일러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녹음 도중 멤버들은 잠시 프랑스 Cannes으로 가서 Elton John의 I’m Still Standing 뮤직 비디오 촬영장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 뮤직비디오의 감독은 듀란 듀란의 전속 감독이었던 Russell Mulcahy였다. 

여러 차례 멤버들은 개별적인 일정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앤디 테일러는 2008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회상하며 이때가 엄청난 악영향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그와 존 테일러의 코카인 중독이 가속화되던 시점을 의미했다.

밴드는 즉흥 연주를 통해 곡을 만들었으며 이안 리틀이 이들 곡 중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선정해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안 리틀은 Roxy Music의 Bryan Ferry와 Phil Manzanera와 작업하며 배운 작곡 기법을 적용했다. 그는 이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브라이언 페리는 키보드로 즉흥 연주를 하며 Moody Synth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Pad 사운드에 풍부한 움직임과 개성을 더한 것이었고 몇 개의 코드만으로도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듀란 듀란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 기법을 통해 밴드는 여러 개의 초기 아이디어를 개발했고 Union Of The Snake의 데모와 미공개 곡 Seven And The Ragged Tiger를 만들어냈다. 정식으로 발표되지 못한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앨범 타이틀명으로 사용되었고 이 곡의 일부는 The Seventh Stranger로 발전했다.

존 테일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작업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곡들의 기초 스케치가 만들어졌다. Of Crime And Passion, (I’m Looking For) Cracks In The Pavement, I Take The Dice,  나중에 New Moon On Monday로 발전한 Spidermouse. 

2. 카리브해 Montserrat에서

듀란 듀란은 타블로이드 언론의 감시와 파파라치의 끊임없는 주목 속에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1983년 5월에 카리브해 몬트세랫 섬에 위치한 George Martin의 AIR 스튜디오로 이동해 녹음을 재개했다. 회고록에서 존 테일러는 밴드가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The Police가 Synchronicity를 AIR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을 보고 그곳이 자신의 밴드에게도 적합한 환경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EMI는 이안 리틀의 프로듀서 경험 부족 때문에 작업 속도가 지연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Alex Sadkin을 영입해 그를 대체하려 했다. 그러나 알렉스 새드킨은 이안 리틀이 밴드의 작곡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잔류를 주장했다. 이안은 이후 자신이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했지만 최종 앨범에서 작곡 크레디트를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듀란 듀란은 몬트세랫에서 5~6주 동안 녹음을 진행했으며 엔지니어는 Peter Wade-Schwier가 맡았다. AIR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곡으로는 The Reflex, Union Of The Snake (1983년 6월 중순 완성)와 New Moon On Monday의 코러스 부분이 포함되었다. 또한 Chic의 백업 보컬리스트 Michelle Cobbs와 B. J. Nelson이 The Reflex의 백킹 보컬을 위해 뉴욕에서 초청되었다.

밴드는 AIR 스튜디오에서 개인적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다. 테이프 기계가 정상 속도로 작동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으며 녹음 스태프가 현지 스튜디오 엔지니어들에게 불만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투덜대고 비전문적이다는 반응을 얻었다. 밴드의 급격한 성공으로 인해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다.

닉 로즈는 세션 도중 쓰러져 비행기 수송으로 Miami 병원에 실려가야만 했다. 신문은 병의 원인을 Paroxysmal Tachycardia (비정상적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증세)라고 보도했다. 앨범의 크리스마스 출시 기한이 정해진 상태였으며 앤디 테일러는 멤버들이 앨범이 기한 내에 완성되지 않을까 봐 우려했다고 회상했다.

1983년 7월 20일 듀란 듀란은 녹음을 일시 중단하고 런던 Dominion 극장에서 열린 Prince’s Trust 자선 콘서트에 참여해 Dire Straits와 함께 공연했다. Charles 왕세자와 Diana 왕세자비가 참석했는데 듀란 듀란은 몇 달 동안 라이브 공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 부족과 기술적 문제로 인해 부진했다. 공연 후 사이먼 , 존, 앤디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었고 이 사진은 다음 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공연에 얽힌 일화가 있는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암살하기 위해 IRA (아일랜드 공화국군) 요원 Sean O’Callaghan이 공연장에 폭탄 설치 후 터트리려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포기한 사건이 나중에 폭로되었다.

 7월 23일, 버밍엄 Villa Park 축구 경기장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에서 공연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공개적으로 듀란듀란을 좋아한다고 밝힌 때가 이 무렵이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몇 곡을 더 작업한 후에 다시 몬트세랫으로 돌아갔다. Melody Maker의 기자 Steve Sutherland가 녹음 세션 현장을 방문했는데 밴드는 완성되지 않은 8개의 신곡을 들려주었다. 그는 여러 곡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평가했다.

스티브 서덜랜드는 Union Of The Snake가 첫 싱글이 될 것 같다고 예측했으며 The Reflex는 그들이 이전에 녹음했던 곡들보다 더욱 날카롭고 강렬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프로듀서 알렉스 새드킨은 기술적 문제와 부족한 신곡 때문에 앨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인정했다. 밴드가 예상보다 곡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회상했다.

3. 호주에서 녹음

몬트세랫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듀란 듀란은 다시 녹음 장소를 변경하여 1983년 8월 말 호주 Sydney로 이동했다. 밴드는 이전 투어와 상업적 성공을 통해 호주와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9월 내내 Seven And The Ragged Tiger라는 제목이 붙여진 앨범의 나머지 곡을 스튜디오 301에서 녹음하고 믹싱을 했다.

스튜디오는 AIR보다 열악했지만 프랑스의 이동식 스튜디오보다 나았으며 프로듀서들은 기술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알렉스 새드킨의 개인 엔지니어 Phil Thornalley가 세션의 엔지니어 역할을 맡았다. 닉 로즈는 페어라이트 CMI 샘플링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앨범의 새로운 사운드를 형성했다.

대부분의 리듬 트랙이 녹음된 상태에서 밴드는 301에서 신디사이저와 기타 오버더빙 그리고 Andy Hamilton의 색소폰 파트를 녹음했다. 사이먼은 작사의 벽을 겪었으며 리듬 파트를 다시 들으며 멜로디 라인을 만들고 이후 그에 맞춰 가사를 작성했다.

이안 리틀은 자신이 가장 관여도가 낮고 가장 비활동적인 존재였다고 느꼈다. 닉 로즈는 새로운 Fairlight CMI 디지털 샘플링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밴드의 사운드를 변화시키려 했으며 Seven And The Ragged Tiger 앨범이 세밀한 요소와 풍부한 사운드가 가득한 더욱 정교한 팝 앨범이 되기를 원했다. 다른 멤버들도 세션 동안 실험을 감행했다.

존 테일러는 베이스 연주에서 음을 줄이며 악기의 감정을 더욱 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알렉스와 협업하여 첫 두 앨범의 기계적이고 딱딱한 비트와 비교해 더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만들었다. 앤디 테일러는 보다 멜로딕 한 연주 스타일을 사용했으며 말린스는 평소의 거칠고 즉흥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했다.

Rafael de Jesus와 Mark Kennedy는 타악기를 추가했으며 말린스는 이것이 더 흥미롭고 역동적인 곡의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고 평가했다. 트랙들은 정기적으로 여러 버전을 거쳤다. 이 시점에서 멤버들은 앨범의 긴 제작 과정에 지쳐 있었으며 방향성에 대한 긴장감이 커졌다.

앤디 테일러는 녹음 과정을 힘든 고행이라고 표현했으며 닉 로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앨범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모두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었죠.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곡들이 많지만 그 아래에는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이 존재했습니다.”

알렉스와 닉은 믹싱 과정에서 여러 리듬 트랙을 삭제했으며 존 테일러와 앤디 테일러의 반발을 불러왔다. 존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밴드 내 균열이 시작된 순간으로 보았다. 이후 1년 동안 균열이 점점 더 심화되었다고 회상했다. 존과 알렉스의 믹싱에 관한 논쟁은 1985년에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The Power Station이 싹트는 계기가 되었고 존 테일러는 처음으로 듀란듀란 탈퇴를 심사숙고했다. 

녹음 과정에서의 갈등 외에도 멤버들은 팬들의 끊임없는 주목으로 인해 호텔을 자주 옮겨 다녀야 했다. 알렉스와 닉은 결국 15시간씩 믹싱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는 1983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첫 싱글 Union Of The Snake가 믹싱 될 즈음 알렉스와 닉은 단 24시간 안에 B-Side 곡을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곡이 Secret Oktober였으며 말린스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전자 음악 카니발이라고 묘사했다.

음악적인 평가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발매 당시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비평가들은 가사가 형편없다고 지적했으며 밴드가 자신들의 음악적 영향을 독창적이지 않게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Record Mirror의 Jim Reid는 이 앨범이 밴드의 몰락이 시작되는 첫 장이라고 평가하며 예술학교 학생들의 조악한 표절물 가사를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하찮은 미스터리라고 혹평했다. 그는 이 앨범을 형편없고 쓸모없으며 듣기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고 표현하며 듀란 듀란의 평범한 재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Ira Robbins 역시 Trouser Press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무해하지만 쓸모없는 오래된 리프와 약한 곡들로 이루어진 잡탕이라 표현하며 Rio에서 후퇴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밴드의 뛰어난 재능이 이런 암울한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Sounds 매체는 이 앨범을 Seven And The Rancid Ravings (썩어버린 헛소리)라고 조롱하며 너무나도 확실하게 끔찍해서 형편없는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앨범은 단순히 형편없는 녹음물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붕괴 직전에 있는 사람들의 신경질적인 장애를 반영한 작품처럼 들린다고 혹평했다.

NME의 Paolo Hewitt는 팝스타들은 오직 자신들만 신경 쓴다고 주장하며 듀란 듀란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약한 음악 구조에 가사로 드라마와 깊이를 억지로 추가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존 테일러는 회고록에서 밴드 전체가 음악적으로 이 앨범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Rio 앨범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다고 평가하며 Seven And The Ragged Tiger는 아름답게 구성된 앨범이지만 이전 앨범들처럼 직관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고 썼다.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Melody Maker의 Michael Oldfield는 이 앨범이 밴드 경력에서 대담한 변화라고 보았으며 듀란 듀란이 1980년대 댄스 음악의 흐름을 확립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나약한 이미지를 종결지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밴드가 점점 싱거워지던 상황에서 다시금 위험과 긴장감을 되찾게 해 준다고 덧붙였다.

Billboard는 이전 앨범들에서 발전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평가했으며 듀란 듀란 특유의 보컬 하모니 스타일을 새롭게 발전시켰으며 더욱 장난스러운 에로티시즘과 클럽 팬들을 위한 강렬한 댄스 리듬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덕션 측면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줬다.

Smash Hits의 Peter Martin은 편곡이 빈틈없고 멜로디는 날카로우며 모든 곡이 마치 James Bond 테마곡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 세련된 조합으로 밴드가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수 있을 것임을 보장한다고 호평했다.

한편 The Village Voice의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대해 혼재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 제국주의적인 나약한 놈들은 포스트 펑크 아니 어쩌면 엘비스 이후 시대에서 가장 한심한 팝스타들이라고 혹독하게 평가하며 가사는 최대한 좋게 봐도 난해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이먼 보다 차라리 기계가 노래하는 걸 듣고 싶다면 이 앨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앨범의 싱글들은 최근 Thomas Dolby가 만든 음악보다 두 배는 즐길 만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평론가들은 Seven And The Ragged Tiger를 듀란 듀란의 이전 앨범들과 차별화된 작품으로 평가했다. Sound On Sound의 Richard Buskin은 Synth-Dance 사운드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으며 작가 Annie Zaleski는 기타 중심의 포스트 펑크보다는 당시 유행했던 세련된 신스팝 사운드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AllMusic의 Mike DeGagne는 이 앨범에서 듀란 듀란이 점점 댄스클럽 음악 스타일로 나아가는 듯한 변화를 보였으며 더욱 감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사와 음악적 결합보다는 전자 사운드와 악기 연출에 집중되었다고 평했다.

Steve Malins 역시 이에 동의하며 아주 세밀하게 구성된 기술 기반의 앨범이라고 묘사했다. 업템포 곡인 Of Crime And Passion과 Shadows On Your Side에서 불면증과 히스테리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AllMusic의 Stewart Mason은 오프닝 트랙 The Reflex를  완성도가 낮은 아트 펑크 실험곡처럼 들리며 Rio의 Hold Back The Rain과 비교했다. New Moon On Monday와 Union Of The Snake는 밴드의 음악적 영향을 보여주는 곡들로서 전자는 Roxy Music의 느낌을 반영하고 있으며 후자는 David Bowie의 Let’s Dance의 베이스 드럼 패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Davis는 (I’m Looking For) Cracks in The Pavement이 The Police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리며 카니발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고 묘사했다. 전자음악 기반의 연주곡 Tiger Tiger는 Henri Rousseau의 정글 그림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배경에서 지속적으로 울리는 저음이 깔려 있고 마치 숨어 있는 부족들이 작은 방울과 나무 막대를 두드리며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 곡인 The Seventh Stranger에 대해 Davis는 밋밋한 발라드, 말린스는 우울한 분위기의 피날레라고 각각 평가했다.

가사에 관하여

사이먼 르본은 Seven And The Ragged Tiger를 작은 특공대의 모험 이야기라고 묘사했다. 이 앨범의 가사는 모호하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밴드가 경험한 명성의 어두운 이면 (Shadows On Your Side), 본능에 따라 사는 것 (The Reflex), 강한 유혹에 이끌리는 감정 (Of Crime And Passion), 정체성을 바꾸어 도피하는 것(The Seventh Stranger) 등이 포함된다.

말린스에 따르면 특히 Union Of The Snake, I Take The Dice, Shadows On Your Side, (I’m LookIng For) Cracks In The Pavement 등은 혼란스럽고 약간 광기에 사로잡힌 상태의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Union Of The Snake의 가사는 음악이 이끄는 몽환적인 혁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New Moon On Monday는 소심한 연인을 설득하려는 한 인물의 시도를 다룬다. Davis는 사이먼의 가사가 당시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불확실성과 감정적 혼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앨범명과 커버에 관하여

앨범 제목과 패키징 앨범 제목은 사이먼 르 본이 고안한 것으로 같은 제목을 가진 미공개 곡에서 따왔다. Seven은 다섯 명의 밴드 멤버와 두 명의 매니저를 의미하며 Ragged Tiger는 성공을 상징한다. 일곱 명이 성공을 쫓아가는 것. 즉, 야망이 앨범의 핵심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닉 로즈는 이 제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1983년에 마치 어린이 책 제목 같다. Famous Five 같은 느낌이 아니라 해적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Steve Malins에 따르면 닉은 여전히 이 앨범을 단순히 세 번째 앨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앨범 커버 촬영은 New South Wales 주립 도서관에서 진행되었으며 사진작가는 Rebecca Blake였다. 앨범 슬리브 디자인을 맡은 Malcolm Garrett은 영국에서 호주로 특별 초청되었으며 멜버른에서 온 실제 벵골 호랑이가 촬영에 사용되었다. 이 호랑이는 앨범 커버뿐만 아니라 이후 투어 프로그램에도 등장할 예정이었다.

촬영 현장에는 스태프, 현지 기자, TV 카메라맨, 팬들이 몰려들었고 듀란 듀란 멤버들은 올 블랙 의상을 착용했다. 닉 로즈는 블랙 Lizard 슈트를 입었으며 존 테일러와 로저 테일러는 턱시도, 사이먼 르 본과 앤디 테일러는 스웨이드와 가죽 의상을 착용했다. 존 테일러는 이후 회고록에서 우리 모두 성공한 젊은 남성처럼 보였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촬영 비용은 약 £65,000 (2023년 기준 약 £277,034, 한화 약 4억 7천만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Paul Berrow에 따르면 원래 계획은 Kashmir에서 호랑이를 활용한 프로모션 촬영을 하는 것이었으나 앤디 테일러와 닉 로즈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또한, 연출 효과를 위해 사용하려 했던 연막탄이 호랑이를 겁먹게 하는 바람에 또 다른 촬영 아이디어도 폐기되었다. 결국 최종 슬리브 디자인에는 호랑이의 눈과 일부 털만 등장하게 되었다.

캐러멜 색상의 앨범 아트워크에는 밴드의 새로운 DD 로고, 초승달 문양, 눈 내리는 산과 강이 묘사된 중국풍의 고대 지도 등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가 포함되었다. Davis는 이 지도가 듀란 듀란이 앞으로 진행할 투어에서 겪을 여정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한편, 말린스는 이 지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을 암시하며 사이먼이 앨범에서 탐색하는 내면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고 분석했다. 모호한 가사들을 통해 드러나는 사이먼의 자기 탐색이라고 설명했다.

음반과 뮤직 비디오 발표

Union Of The Snake 싱글은 1983년 10월 17일 발매되었으며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모두 3위에 올랐다. 이 곡의 싱글이 라디오에 공개되기 일주일 전에 Capitol 레코드는 뮤직 비디오를 MTV에서 먼저 방송하도록 했기 때문에 라디오 방송국들은 불공정한 처사라며 반발했다.

밴드가 전 세계 투어를 시작한 직후 1983년 11월 21일에 Seven And The Ragged Tiger 앨범을 발매했다. 발매 즉시 영국 앨범 차트 1위로 진입하며 듀란 듀란의 첫 UK 차트 1위 앨범이 되었고 발매 후 일주일 만에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 데뷔했을 때는 Rio 앨범과 Duran Duran 재발매 앨범이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있었다. 1984년 1월에 미국에서 플래티넘 획득 (더블 플래티넘은 1991년 11월 25일 획득), 1984년 2월 11일에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8위까지 상승했다.

1984년 1월 23일, New Moon On Monday가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B사이드에는 Tiger Tiger의 리믹스 버전이 포함되었다. 뮤직비디오는 Brian Grant가 감독했으며 중세 프랑스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상미가 돋보였다. 이 영상은 일본 투어 재개 직전 파리에서 이틀 동안 촬영되었다.

밴드 멤버들은 이 영상을 싫어했다고 하지만 MTV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재생 횟수를 기록했다. 싱글 음반은 영국 9위, 미국 10위를 기록했으며 EMI는 두 번째 싱글까지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자 알렉스 새드킨이 히트 싱글을 제작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호주 투어 중, 존 테일러는 INXS의 싱글 Original Sin의 사전 공개 버전을 들었는데 이 곡은 Chic의 멤버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싱하고 Jason Corsaro가 엔지니어링을 맡은 작품이었다. 그는 이 곡을 듣고 The Reflex도 리믹스하면 싱글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나일 로저스는 곡을 더욱 댄스 지향적으로 만들기 위해 보컬을 루핑하여 반복 효과를 추가하고 퍼커션을 보강하며 템포를 빠르게 조정하고 곡 길이를 단축했다. 존 테일러는 이 리믹스가 처음에 EMI와 Capitol로부터 반발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앤디 테일러에 따르면 레이블 측에서는 이 곡이 듀란듀란에게는 너무 블랙뮤직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임원들을 설득했고 1984년 4월 16일 (전 세계), 4월 21일 (미국)에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된 리믹스 버전은 최초 미국  1위 그리고 두 번째 영국 1위 싱글이 되었다. 이 곡의 성공 덕분에 Seven And The Ragged Tiger 앨범 판매량은 다시 급증하여 1984년 7월 14일,  빌보드 200 차트에 다시 8위에 올랐다.

싱글과 함께 공개된 The Reflex 뮤직비디오는 러셀 멀케이가 감독을 맡아 캐나다 Toronto의 Maple Leaf Gardens에서 이틀 동안 촬영되었으며 존 테일러는 듀란 듀란이 단순한 비디오 밴드가 아니라 라이브 밴드로서의 실력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공연에서 촬영된 영상을 원했다고 한다. 1980년대 특유의 편집 스타일과 콘서트 촬영 기법이 결합된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최고의 무대 연주를 뽑는 MTV Video Music Award 후보까지 올랐으나 Van Halen의 Jump가 수상했다.

Sing Blue Silver Tour

Seven And The Ragged Tiger 앨범을 홍보하려고 듀란듀란은 호주, 일본, 영국,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세계 투어를 시작했다. Rio의 The Chauffeur 가사에서 따온 Sing Blue Silver Tour라는 명칭으로 진행되었으며 감독 Russell Mulcahy가 투어의 기록 영상을 촬영했다.

투어는 1983년 11월 중순 호주 Canberra에서 시작되었으며 12월 초 런던 공연을 위해 영국으로 복귀했다. 1984년 1월 중순부터 말까지 일본에서 7회 공연을 진행했다. 일본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큰 공연장에서 무대에 섰으며 팬들의 함성이 너무 커서 연주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투어 내내 밴드는 앨범에서보다 더욱 강렬하고 무거운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로저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타가 더 전면에 나서고 우리는 더욱 강렬한 사운드를 추구합니다. 기본적으로 록 콘서트죠. 우리는 신디사이저 밴드가 아닙니다.”

북미 투어는 1984년 1월 말에 시작되었으며 말린스에 따르면 밴드는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탐험의 여정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 투어 중이던 2월에 밴드는 Grammy Awards에서 Best Long Form Video, Best Short Form Video 두 개의 상을 수상했다. 같은 달에 Rolling Stone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Fab Five (비틀즈의 Fab Four를 연상시키는 표현)라는 별명을 얻었다.

투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굿즈 판매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일정은 멤버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추운 날씨와 지속적인 음주 및 약물 사용 때문에 멤버들 간의 긴장감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말린스에 따르면 멤버들의 자만심이 커지면서 무절제한 행동이 증가했으며 특히 앤디 테일러의 행동이 두드러졌다.

3월에 밴드는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에서 공연을 이어갔으며 뉴욕 Madison Square Garden에서 이틀 연속 매진 공연을 기록했다. 이것은 듀란 듀란이 1981년 EMI와 계약할 당시 세웠던 목표 중 하나였으며 마침내 이를 실현하게 되었다. Sing Blue Silver Tour는 미국 전역을 돌며 계속되었고 4월 중순 San Diego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투어 막바지에 이르러 존 테일러는 공연 중에도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캘리포니아 Oakland 공연의 장면들이 촬영되어 이후 콘서트 영화 Arena (An Absurd Notion)로 제작되었다. 예정되어 있던 유럽 투어는 멤버들의 심각한 피로 때문에 취소되었다. 이 투어는 1980년대 오리지널 멤버 5명이 함께 한 마지막 투어였다. 투어 종료 후 밴드는 스튜디오 세트에서 추가 촬영을 진행하여 Arena 콘서트 영화와 함께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Sing Blue Silver도 함께 발표되었으며 Arena (An Absurd Notion)의 단축판인 As The Lights Go Down이 미국 주요 TV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투어에서의 라이브 녹음과 함께 Nile Rodgers가 프로듀싱한 신곡 The Wild Boys가 추가된 라이브 앨범 Arena가 발매되었다.

트랙 리스트

EMI는 2010년 Seven And The Ragged Tiger를 두 가지 형식으로 재발매했다. 하나는 2CD 버전, 다른 하나는 3디스크 박스 세트(2CD + 1DVD) 버전으로 후자에는 As The Lights Go Down 영상이 처음으로 공식 수록되었다.

트랙 리스트는 2010년 재발매된 앨범이며 1페이지에 1983년 발매된 오리지널 앨범의 9곡을 담았다. 2~3페이지의 곡들은 싱글 음반에 수록된 B-Side, 12인치 리믹스, 라이브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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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기록과 인증

① 1983~1984년 주간 앨범 차트: 호주 Kent Music Report 2위, 캐나다 Top Albums / CDs (RPM) 7위, 네덜란드 Album Top 100 1위, Finnish Albums (Suomen virallinen lista) 3위, 뉴질랜드 RMNZ 1위, 스웨덴 Sverigetopplistan 19위, 노르웨이 VG-lista 14위, 영국 OCC 1위, 미국 Billboard Top LPs & Tape 8위, 오스트리아 Ö3 Austria 11위, 유럽 Eurotipsheet 8위, 독일 Offizielle Top 100 17위, 이탈리아 Musica e dischi 12위, 스위스 Schweizer Hitparade 16위

② 2024년 주간 앨범 차트: 헝가리 MAHASZ 11위

③ 1983년 연말 차트: 호주 Kent Music Report 86위, 영국 Gallup 24위

④ 1984년 연말 차트: 캐나다 Top Albums / CDs (RPM) 15위, 뉴질랜드 RMNZ 18위, 독일 Offizielle Top 100 37위, 네덜란드 Album Top 100 7위, 영국 Gallup 53위, 미국 Billboard Top LPs & Tape 10위

⑤ 음반 판매량 인증: 미국 (RIAA): 2× Platinum (2백만 장 이상), 영국 BPI: Platinum (3십만 장 이상), 네덜란드 NVPI: Gold (50,000), 유고슬라비아: 48,079, 캐나다 Music Canada: 3× Platinum (3십만 장 이상), 뉴질랜드 RMNZ: Platinum (1만 5천 장 이상), 핀란드 Musiikkituottajat: Gold (25,000), 일본 (150,000), 스위스 IFPI Switzerland: Gold (25,000)

참여 아티스트

Duran Duran: Simon Le Bon (Vocals), John Taylor (Bass), Nick Rhodes (Keyboards), Andy Taylor (Guitars), Roger Taylor (Drums)

Additional Musicians: Andy Hamilton (Soprano & Tenor Saxophone) / Rafael de Jesus, Mark Kennedy (Percussion) / Michelle Cobbs, B. J. Nelson (Backing Vocals On Union Of The Snake & The Reflex)

Production: Alex Sadkin (Producer) / Ian Little, Duran Duran (Associate Producer) / Phil Thornalley, Peter Wade-Schwier (Recording Engineer) /Jim Taig (Tape Operator) / Malcolm Garrett (Graphic Design) / Keith Breeden (Illustration)

출처: en.wikipedia.org
duranduran.fand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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